* 배변훈련(사전적 의미) : 대, 소변을 가리도록 훈련하는 것.
사전적 의미대로 성격급한 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기저귀를 때도록 두지 않았다.
그것도 세 아이 모두 다 정말 다른 스타일로 다른 시기에 마치게 된 과정을 기록해보려 한다.
1. 첫째 아이 - 현 8세(82개월)
성격 급한 첫아이 엄마였던 나는 40주를 넘기지 못하고, 임신 40주에 맞추어서 유도분만 날짜를 잡고 보기 좋게 실패를 하며 수술로 아기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원치 않던 시기에 나오게 되서 인지 원래 성향인지 이 아이의 영유아 시기의 육아가 참으로 고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high needs baby였다.
그 모든 니즈를 울음으로 표현하였고, 돌 이후에는 낮잠도 안자는 날이 허다할 만큼 기본(먹고, 자고, 놀기) 이 힘들었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대부분이 평균보다 높은 편이었고,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라 배변훈련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끝나게 되었다.
그 시기는 18개월 즈음이다.
보통은 소변을 먼저 뗸다고 하지만, 이 아이는 대변을 먼저 성공하고 한 달 안에 소변까지 마친 케이스였다.
첫아이답게 유아변기부터 같이 앉아서 연습하며, 대변이 이루어지자 그때부터는 기저귀 없이 팬티를 입혔다.
물론 밖으로 외출할때도 아이가 혼동되지 않게 계속해서 팬티를 착용하며 기저귀와 번갈아 입히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 미만의 기간을 열심히 빨래하며 바닥을 닦으며 시간을 보내니 아이는 어느새 가정어린이집 3세 반에서 유일하게 기저귀를 하지 않고 화장실에 가는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예민함 덕분인지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금까지 실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새벽 1~2시에도 화장실에 다녀오는 아이라서 참 감사하다.
2. 둘째 아이 - 현 6세(62개월)
어쩌다..라고 표현하긴 나조차 민망하지만, 그렇게 힘든 첫아이의 육아를 겼고 임신을 하며 지금까지의 과정을 반복한다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빨리 정신차려야 할 타이밍이다.
좋은 건 받아들이고, 좋이 않은 결과였던 것은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할 때.
몸도 마음도 망가진 제왕절개를 경험하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자연분만(브이백)에 도전했고 다행히 성공했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게 정말 큰 행운이었고, 모르니까 용감했나 싶었다.)
첫 아이와 다르게 계속 기다리며 40주 이후에 진통이 와서 다행히 출산 후 남편인가 싶은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아이를 육아하며 느낀점은 이래서 사람들이 둘셋 낳을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이게 육아의 평균인듯 싶었고, 배변훈련도 보통의 아이들과 같이 평균을 담당하는 아이라서 감사하다.
첫 아이와 똑같이 유아용 변기부터 소변 연습을 하고 이후 소변 성공 후 대변까지는 계속 기저귀를 떼며 팬티를 입었다.
약 일주일의 빨래 러쉬아워를 상상한다면 하루 이틀이면 끝낼 수 있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소변에서 대변으로 이루어지고 잠자리라는 큰 관문이 버티고 있다.
아예 집에서 기저귀를 주문하지 않게 된 시기는 24개월 즈음.
첫 아이와는 다르게 예민하지 않아 자면서도 화장실 갈 생각 전혀 없는 아이 덕분에 5세(작년)에 참으로 많은 이불 빨래를 했었고, 뭐 지금이라면 한 달에 한번 정도 꼴이니 나쁘지 않다고 본다.
3. 셋째 아이 - 현 5세(42개월)
우리집 막내다.
막내니까 뭐든 기다려주고, 천천히 가자 싶었다.
육아도 경험 안 해본 게 아니니 언제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두 돌(24개월) 무렵에 소변을 떼게 되었다.
그 이후 기저귀의 주문은 단 한번도 없었으며, 첫째 아이 때처럼 유아변기에서 계속해서 연습하는 정성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변을 뗀것이 아니었고, 사람이 없는 방에 가서 혼자 볼일을 보고 씻겨달라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첫째 때 제대로 못해본 영어노출을 막내라도 제대로 해보자 싶어 두 돌 이전에 시작된 영어 노출 덕분인지 꼭 우리말도 외국인이 한국말하는 느낌이고, 영어 수준도 비슷해서 중단할 수도 지속하기도 애매한 아이였다.
막내의 삶은 고달프다.
더구나 위 언니 오빠의 터울이 적으니 엄마의 동선에 모든 곳을 동행해야 하고, 자고 싶을때 못 자고 더 놀고 싶을 때 언니 학원에 픽업을 가야 한다.
그런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서 미안한 마음에 외출 시 편의점에서 아이가 원해는 간식을 하나씩 사주기 시작했다.
내가 내 발등을 찍기 시작한 걸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단호한 나였는데, 그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꽤 몇 달을 아이는 편의점과 친구가 되며 배를 채우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가족과의 식사는 멀어졌다.
36개월까지는 무조건 기다려보자는 나의 내면의 소리를 외면한 채 아이는 11월 본인의 생일을 그렇게 넘기고 해가 바뀌었다.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봄은 찾아왔으나 내 마음은 겨울이었다.
그래도 세 번째 육아인데, 아무리 아이들 다 다르다지만 별의별 생각이 들면서 꼬리를 무는 고민들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펼쳐졌다.
정신을 차릴 무렵, 아이는 잘못이 없을 것이다.
나만 원점으로 돌아가서 시도해보기로 했다.
배변이 잘 이루어지려면, 잘 먹어야 하고, 그 사이 상호작용하면서 놀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동안 제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을 단호하게 먹은 날부터 편의점에 발길을 끊었고, 집안에 간식을 전혀 들이지 않았다.
하루 세 번의 식사와 오전, 오후 두 번의 간식을 식탁에 차리고 30분 후 바로 치웠다.
전혀 먹지 않았다.
나는 음식물쓰레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 손에 간식을 쥐어준 건 나였으니 며칠 사이에 돌아올걸 물론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은 아이가 우유를 마시며 밥을 한 톨도 먹지 않았다.
(물론 생선과 사과, 김 이렇게 짭조름한 것만 먹고 밥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입에 넣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가고 우유를 중단하는 결단을 내리고, 아이는 2일 만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태 우유는 주고 있었기에 그것으로 허기를 달래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우유를 중단한 지 24시간 후, 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나 싶어 폭풍 검색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그렇다고 볶음밥이나 덮밥 등 주는 대로 다 먹는 아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배고플 때 밥을 먹게 된 것이다.
그리고 3일 후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에 가자고 해서 변기에 대변을 보게 되었다.
이때도 나는 소변인 줄 알고 같이 가주었는데, 변기에 앉자마자 3초 만에 대변이 끝나고 순식간에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 이전 약 2주 동안 신호가 보이면 데려가 앉혀서 같이 힘을 주자고 수십 번 말하면서 시도를 해야 실패할 수 있고, 실패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애석하게도 안 한 번도 나의 외침에 힘을 주는 척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오래앉아있는 것을 싫어했고, 혼자 빠르게 끝내고 싶어한 아이였다.
그렇게 아이는 42개월이 된 지금 자신이 선택한 시기에 모든 배변훈련을 마쳤다.
훈련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아이는 다 자기만의 때가 있다는 것을 너무도 여실히 보여준 아이였으니...
막내는 언니 닮아서 밤에도 전혀 실수가 없다.
* 내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들었던 생각 -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 그런 사람들은 거의 뭘 잘못하지 않는다.
* 눈물 나게 여한이 없고 행복한 하루다.
다시는 없을 내 막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오늘도 수많은 고민을 이룰 부모들이 나보다는 마음 편한 하루이길 진심으로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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