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여느 날과 비슷하거나 더 기운이 없었던 어느 저녁이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저녁은 보통 이러한 일과다.

아침엔 항상 새벽 일찍 눈을 떠서 여유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7시~7시 반에 눈이 떠져서 침대에서 곧 등교하는 아이의 <건강상태 자가진단> 어플에 들어가 체크를 한다.

그다음은 몸을 일으켜 눈만 뜨고 가장 먼저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팬을 올리고 달걀을 툭.

(예열이라는 거 좋다는 거 알지만, 성격 급한 나는 반은 못할 때가 훨씬 많다)

그렇게 간장계란밥을 빠르게 하고, 김과 함께 사과 몇조각을 후식으로 내려놓으면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아침밥을 먹는다.

물 챙기고, 옷도 챙기고, 머리도 빗어주고 등등 자잘한 엄마의 할 일이 끝나고 최대한 밝은 얼굴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첫째 아이 컷!

다음 장면은 이제 슬슬 일어나려고 꾸물거리는 둘째와 셋째.

둘째 아이가 일어나면 먹을 사과를 미리 깍아서 식탁 위에 놓고,

나도 아주 잠시의 여유시간이 생기면 읽고 쓰기를 해보겠다며 노트북과 책을 들고 식탁에 앉아서 정신없이 타이핑을 하기 시작한다.

대충 마치면 아이들은 일어나있고, 아이들 입에 유산균을 한 봉씩 털어주기 바쁘다.

그 후엔 매일 산더니같이 쌓아져 있는 빨래 가동을 시작하며, 아이들 식사를 또 준비.

나는 배가 고프면 체중조절식 쉐이크를 먹는데, 이걸 먹으면 그걸로 한 끼는 건너뛰어야 하는데 문제는 한 시간만 있으면 또 배가 고프다.

그럴 거면 그냥 제대로 밥이나 먹지...

셰이크 먹고 1~2시간 후 라면을 끓여먹게 된다.

먹으니 에너지가 좀 생겨 예의상 둘째에게 "책 볼까?"라고 물었더니 이때다 싶어 냉큼 두권 가지고 달려온다.

책은 타이밍이다. 영어 영상보다 포켓몬스터 영상보다 반복하면서 잠시 틈이 있을 때 살짝 들이댔는데 물었다.

그렇게 읽은건지 졸은 건지 모를 정도로 2권을 어떻게 마치긴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는 빠르다.

1시에 하교 후 집에와서 양치하고, 가방과 옷 등 정리하고, 알맞은 옷으로 갈아입고 학원으로 출동!

(미술과 태권도)

다녀오면 간식먹고 동생과 음악학원!

그러는 동안 셋째(막내)아이는?

뭐, 의식주만 겨우 챙기는 수준이다.

이렇게 다가오는 저녁에는 첫째가 도서관에서 빌렸다며 좋아하는 책(대략 봐도 100페이지 넘게 글밥 가득했음)을 같이 보자고 했을 때,

최대한 기뻐하며 같이 읽기 시작하며 저녁 밥하는 것을 거의 포기했다.

(물론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금요일 저녁이니 배달음식 한번 주문해도 되겠다는 셀프 꼼수가 있었다)

낭독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아주 많이 앗아가는 활동이다.

겨우 책 한 권을 마치고, 아이도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여유롭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물었을 때 오랜만에 중국음식을 말해주었고, 아주 흔쾌히 빠르게 주문했다.

그리고 그렇게 바닥인지 마이너스인지 하는 체력으로 저녁식사를 마주했다.

 

 

도착한 음식은 흔한 세트.

짜장+짬뽕+탕수육!

짜장부터 빠르게 비벼서 아이들 접시에 크게 떠주고, 탕수육도 잘라서 소접시에 덜어 주었다.

드디어 대망의 짬뽕!

후기에 보니 이 집 짬뽕이 매콤하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평도 좋았다.

마주한 짬뽕은 흔한 플라스틱 원형 배달용기 안에 비닐로 한번 더 감싸진 짬뽕 국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불지 않게 별과 별도로 배달이 된 것이다.

그렇게 짧은 순간에 환경을 한번 더 생각하며 집에 있는 냉면기를 꺼내 비닐에 쌓인 국물을 부으려고 했다.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환경부였고, 지금도 전기차를 타는 나는 환경을 그렇게나 생각한다.

그날의 컨디션은 잠시 잊어두고...

옮기려고 짬뽕 건데기와 국물로 가득한 봉지를 싱크대에 잠시 두었을 뿐인데, 1초 정도였을까?...

건더기가 한쪽으로 몰려있었는지 무게중심이 안 맞았는지 한쪽으로 쏠린 봉지는 싱크대 아래로 그대로 쏟아지면서 봉지를 탈출했다.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입고 있던 바지를 1초 만에 벗었다.

뜨거운 국물이 바닥과 허벅지로 튀면서 순간 화상을 입은 거마냥, 버틸 수 없어 찬물로 다리를 가라앉히고 돌아온 현장을 처참했다.

아이들은 현장을 보자 말없이 자리로 돌아가서 조용히 식사를 지속하였고, 나는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이 정신과 체력으로 이걸 치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포기해도 좋으니, 그냥 이불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현실은 역시 그렇지가 않다.

혹시나 싶어 남편에게 전화를 해보니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대충 허벅지에 쿨 패치 세장을 첫 붙이고, 크고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며 물티슈와 휴지, 수건, 행주 등 있는 것은 다 동원해서 대충 치워냈다.

하필이면 싱크대를 타고 아래 하부 수납장까지 국물이 타고 들어가서 안쪽까지 닦아내고, 주방 바닥은 정말 대충 닦아만 내고 로봇 물걸레 청소기를 돌렸다.

자장면 좋아하는 막내는 엄마가 주지 않으니 먹지 못하고 언니 옆에 앉아서 언니가 주는 자장면을 한가닥씩 겨우 얻어먹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식탁에 아이들 자장면 한 그릇씩 크게 리필해주고, 곱빼기로 시켜서인지 다행히도 조금 남아 나도 몇 젓가락 하게 되었다.

 

 

짬뽕은 가고, 다음날 봄날이 찾아왔다:)

 

 

그래도 화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때까지도 후끈후끈 열감이 있었던 내 허벅지.

그만큼이나 허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마이너스로 향하는 마음.

아이가 식사를 마치고, 첫째의 휴대폰으로 아빠에게 퇴근 시간을 물으려 전화하니 받는다.

세상에 이것도 열 받았다.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서, 딸의 전화는 그렇게 쉽게 받을 수가 있는 거구나!

엄마의 소식을 전한 아이로 인해 남편은 그때 바로 퇴근을 했지만, 그날 저녁밥은 없다.

저녁식사는 셀프라는 것이다.

식사를 하지 않고 퇴근한 날에는 그래도 배려하여 항상 차려주곤 했었는데, 그날은 물 한잔도 없었다.

남편도 물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사태를 파악한 건지, 짬뽕 국물에 들어가지 못한 면 봉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짜장 소스에 비벼먹는 모습을 보며 그날의 하루를 마쳤다.

 

그렇게 잠자리 독서를 마치며 겨우 눈을 부치며, 당분간 짬뽕은 안녕이라며 속으로 크게 외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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