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의 우리 집 첫째 아이의 눈물을 뺀 주범은 바로 남편이었다.
이 모든 일은 남편이 우리 집 서열을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편도 첫째 아이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딱 한 가지!
"우리 집 대장은 엄마잖아?"
ㅋㅋㅋㅋㅋ
그렇다. 대장이 되고 싶은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되어있었다.
어느 평화로운 주말, 우리는 가족 중 한 명 생일 겸으로 점심식사를 밖에서 하기로 했다.
모처럼 본인들이 원하는 예쁜 원피스와 구두로 차려입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미용실이다.
둘째 아들의 머리를 정돈할 겸, 첫째 앞머리를 다듬고, 막내의 머리카락을 싹둑할 계획이란다.
이 집 공식 가장인 아빠의 계획이다.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긴 머리를 휘날리던 그녀는 앞날을 모르고, 언니를 따라 인형 하나 들고 집을 야무지게 나섰다.
평소 우리 집 막내는 머리 묶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한 번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심정으로 묶으면 잡아당겨서 다 풀러 대고, 울어도 한번 묶어보고 풀어져 있고...
이것을 3번 이상 반복하며 나는 포기하고 그녀의 전지현 스타일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빠의 입장은 달랐나 보다.
묶지 않을 거면 언니처럼 단발로 싹둑 자르겠다는 것이다.
미용실에서의 그림이 벌써 훤히 그려진다.
미용실로 향하는 내 앞의 4인방.
단체손님 곧 갑니다:) 기다려주세요!
한 동네의 작은 미용실은 우리 집 5인 가족이 들어서면 꽉 찬 분위기다.
남자 원장님은 말이 없고, 손이 빠르며 실력이 좋으니 계속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주말이라 오늘은 두 명의 손님이 의자에 앉아계셨고, 기다림이 있었지만 차례는 곧 도래하였다.
남편은 혼자 마음이 급했는지 누구부터 커트를 할지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그러자 첫째가 본인부터 자르겠다고 했을 때, 갈등이 시작되었고 결국 남편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새로운 곳에 오랜만에 오게 된 둘째 아이는 여러 의자를 오가며 둘러보며 누나의 진행상황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이런 모든 상황이 난잡하게 신경 쓰이는 남편이 내 눈에 제일 크게 보인다.
드디어 무난한 두 명이 차례를 마치고, 세 번째 막내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인정하지 못하고 의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 남편의 멘탈도 함께 벗어나는듯했다.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나는 미용실에 처음 들어와서 계속 한 의자에 망부석처럼 앉아있기만 했다. 막내가 마무리될 때까지)
평소 언니 말이라면 찰떡같이 드는 막내이기에 언니가 바로 나섰다.
막내가 앉아있는 거울 앞에서 시선을 사로잡으며 마음이 진정될 수 있게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돕고 있었다.
남편도 비슷한 역할을 하며 좌우를 감쌌다.
이때 막내는 원장님을 포함해 세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평소 막내가 좋아하는 영상으로 아이를 진정시켜 보고자 남편은 본인의 휴대폰을 꺼내며 이것저것 던져보았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물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였다.
진땀이 나는 상황에서 커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원장님께 최대한 협조해 머리를 잡아주거나 옆에 있어주는 게 최선이다.
뭐라도 해보면서 진정시켜보려는 남편은 아무것도 되지 않자 불똥이 첫째 아이에게 튀었다.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면서, 저 뒤쪽 대기석으로 물러나 있으라는 것이었다.
멀리서 보고 있던 나는 그게 꼭 첫째가 아니어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렇게 삐져있는 첫째 아이를 뒤로 하고 남편은 최단시간 마무리된 막내의 머리스타일을 보며 예쁘다고 연신 말하고 있었다.
처음 막내의 스타일 주문 때 첫째와 똑같이 해달라고 말하던 때는 잊은 것처럼.
그렇게 남편은 미용실에 나올 때까지 화기 약간 나 있었고, 우는 막내를 또 데려 나오고 사진 찍은 건 첫째였다.
이 날 남편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점심 약속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첫째의 앞머리 정도는 본인이 집에서 자를 수 있었는데 굳이 하겠다고 나선점.
새로운 장소에 왔으니 이것저것 관찰하며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막내의 커트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는데 옆에서 첫째가 조력자가 아닌 방해자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날 첫째의 입장에서는 아빠의 모든 것이 상처였을 것이다.
집 밖에 나설 때에도 막내의 옷을 골라주고 나란히 인형을 골라 사이좋게 나온 것도 본인이었다.
미용실에도 본인이 먼저 본보기 커트를 함으로써 순조로운 방향을 나아간 것이다.
결국에는 머리스타일도 동일하게 해서 달래고 안아주는 것도 첫째의 행동에 포함이었다.
미용실에 들어갈 땐 좋았으나, 나올 때는 첫째와 막내 누구도 아빠 손을 잡지 않았다.
나는 막내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첫째를 안아주며 빠르게 상황을 전환해야만 했다.
정해진 점심 약속이 있으니 점심 먹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서로가 불편한 마음을 안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차에 타자 그동안의 과거가 데자뷔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1. 코로나 시국으로 아빠 없이 엄마랑만 평일에 서울대공원에 갔던 기억으로 아빠와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가 가서 식사하고 남편은 너무 힘이 부쳤는지 퇴장하자고 하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첫째 아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가자고 할 때 집에 못 가서 토라진 남편은 다시는 서울랜드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첫째 아이는 친구와 혹은 동생과 서울랜드 약속을 잡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아빠는 배제하게 되었다.
이제 남편은 본인이 함께하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그런 애매한 불상사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2. 집 근처 빵집에 커피 무료쿠폰이 있어서 첫째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들렸던 모양이다.
남편은 당연히 무료쿠폰으로 커피 한잔만 포장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린아이 눈에는 간식거리 천지인 그곳에서 맨손으로 나온다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아이는 평소 엄마와 자주 골라와서 먹어보았던 <갈릭 롱 소시지>를 사달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여러 핑계를 대었다.
갈릭이 뭔지 아냐고... 갈릭을 먹을 수 있는 거냐고;;;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걸 밝혔고, 남편은 그 사이에 재빠르게 계산해서 이미 끝났다는 핑계를 대고 나와버린 것이다.
이렇게 간식의 쟁탈의 기회를 빼앗겼다고 느낀 아이는 서로가 눈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3. 분리수거하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 집 분리수거 담당을 맡고 계신 남편은 퇴근하고 나서 수요일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하기 위해 또 바리바리 나선다.
저녁을 먹고 심심하던 차에 기회를 놓칠 리가 없던 아이들은 이때다 싶어 양말과 외투만 대충 챙겨 입고 아빠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한 가지 챙겨서 밖으로 스프링처럼 향합니다.
아빠가 분리수거하는데 오래 걸릴 거니까 그 사이 뛰어놀거나 놀이터 한 바퀴 순회공연하려는 목적이 듬뿍 담겨있지요.
그날 따라 봄인데 좀 추웠던 날이고, 아이들은 해가 졌는데도 밖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고 싶은 남편은 또 그러지 못하였고, 아이들의 욕구는 또 충족되지 못했다.
추우니까 퇴근했으니 집에서 쉬고 싶은 남편과 이 정도로는 너무 부족한 아이들은 또 씩씩대며 돌아왔다.
#놀이터적정시간
#아빠들1시간
#아이들2시간
#엄마랑나가면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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