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처음엔 별거 있겠나 싶은 생각으로 출산과 육아를 접하고, 나름 육아 8년 차이지만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렇게 어려운건줄 알았으면 딩크족이었을듯하다.)
아이는 매 순간 성장하고, 그 순간의 나는 매 순간이 처음인 엄마다.
제법 많은 육아책과 부모교육 카테고리의 서적을 접한 나로서는 그래도 뭔가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로서 어떤 가치관 같은 것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나 떠올려보면, 학창시절에 해야 할 공부라는 학습에 관해서는 아이마다 다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언성을 높이고, 억지로 앉혀서 시키면 당연히 아이는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아이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앞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이 든 간에 반항할 수 없이 해내고 만다.
그런 게 공부 1-2년만 하고 말 것 아니고, 학창 시절은 긴 마라톤과 같은 것인데 내가 그런들 무슨 소용이겠나 싶었다.
아이와의 관계를 잘 다져놓아서 아이가 진정으로 의지가 생겨서 하려고 할때 뒷받침이 되어줄 거름만 잘 주어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시기가 빨리 올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나에게 아이를 방치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이가 학습이라고 여기는 것을 거부한다면 자유롭게 다른 읽기 활동을 하며 아이가 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글쓰기가 싫거나 어려우면 그림 그리기를 하는 것이다. 책 읽기가 싫은 날에는 전단지나 잡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현실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 너무 잘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기관을 다니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늦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입학하면 1학년 수업에서 한글을 배우는 과정은 공통으로 있지만, (거의 대부분) 학생들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깨치고 수업에 임한다.
(심지어 영어도 이미 많은 수업을 경험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내가 아이에게 따로 한글을 가르쳐본 적은 없고, 아이들도 따로 한글과 관련된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6-7세가 되니 자연스럽게 글자를 읽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두꺼운 책도 무리 없이 잘 읽어나가는 수준이다.
(물론 쓰기는 전혀 완벽하지 않다.)
집에 있는 책을 읽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기도 했거니와 가끔씩 ebs 한글이 야호를 시청한 것이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뭔가에 두드러지는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지만 밝고 건강하게 학교생활하는 데는 무리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새로 다니기 시작하는 음악학원에서의 피드백이 좋지 않았다.
음악 학원은 실기수업도 있지만, 이론을 배우는 음악 관련 워크북을 하는데 아이가 잘 모르겠다면 자주 질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접하는 단어가 있었나 싶기도 했고, 당연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문제를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읽어본 후에 질문하는 게 어떨까 싶었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선생님께 계속 질문 중이었다.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자 나는 아이가 집중하지 않았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다른 아이의 수업을 방해해서 피해를 준다고 여겨서 약간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게다가 이제 학교에 입학하는데 초등의 현실은 다르다며 집에서 워크북 같은 활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현실 vs 이상
나의 이상(가치관)이라면 아이가 싫어하는 학습지 등을 억지로 시키지 않고, 대신 다른 읽기나 좋아하는 활동을 했을법한데 이번엔 좀 파도가 강하게 몰려왔다.
사실 두렵다.
아이의 학창 시절은 이제 시작일뿐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쓰나미가 몰려와서 나를 흔들어댈지...
그날 속상한 마음에 감정에 휘둘려서 아이를 다그치고 아이와 잠든 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아이에게 빠른 사과부터 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혀 다른 시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의 어릴 적 학업의 어려웠던 점을 서로 공유하고 남편은 아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소리 내서 글을 읽을 때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점, 음악을 들으면 문제를 풀 때 집중이 안 되는 점, 오히려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눈치를 보다가 질문을 앞으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등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다른 공간에서 그런 상황이라면 다른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이때 나는 아이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선택을 했다.
내가 다그치고 선생님 역할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닫고, 이상을 따르기로 했다.
아이는 위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에 지지하고 학습에는 시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오히려 책 읽기를 꾸준히 해와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내가 아이를 망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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